jpnews는 8월 15일 아침 7시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으로 참배를 하는지' 직접 인터뷰를 시도해보았다.
■ 첫번째 인터뷰: 타카나시 사치요(80, 여) 씨
- 야스쿠니와 관련이 있는가
오빠가 전쟁때 돌아가셨다. 해군이었는데 필리핀 해전에서 가미가제특공대로 사망했다.
- 당신에게 야스쿠니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원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 동안 야스쿠니는 다른 가족들이 왔는데, 지금은 다른 가족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나라도 매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고 있다. 평상시에는 안오고 2003년부터 매년 8월15일에 한번씩 오고 있다.
- 2006년 고이즈미 전 총리 참배때도 왔었나
그때 왔었다
- 그때, 한국이나 중국에서 직접 야스쿠니 신사에 와서 반대하는 것은 봤나
그건 못봤는데, 나중에 뉴스틀 통해 들었다
- 그때 기분은?
착잡했다. 한국이라든가 중국 사람들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로서도 오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반대를 너무 하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부터는 그런 모습을 보기 싫어서 아침 일찍 온다.
-오늘 몇시에 왔나
그래서 6시에 왔다.
다음은 두번째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다.
■ 오키나와전 참전했던 '이시구로 미츠노부' 87세 "오키나와는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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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온 이유는
오키나와 전투 참전했다. 나와 같이 전투하다 죽은 전우들을 참배하러 왔다.
- 언제부터 왔나
1976년 4월 4일부터 참배했다.
오늘로 204번째, 주머니속에서 자기가 온 날을 빽빽히 적은 종이를 꺼내서 보여줬다.
- 그 당시 부대에 대한 기억은?
오키나와 전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391명의 부대였는데, 242명이 전사했다.
45년 4월 1일 미군이 '가데나 항공기지'에 상륙하면서 우리 부대와 전투를 했는데, 우리부대는 끝까지 결사항전하다가 일주일만에 항복했다. 나도 포탄 파편으로 머리 왼쪽에 상처를 입었다. 그때만하더라도 그렇게 탄약이 좋은 게 아니라서 중상은 아니었다. 그냥 미군포로수용소에서 고쳐줬다.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6개월 있었는데, 미군은 전투를 하다가 잡힌 적군은 전우취급을 해줬다. 즉 먹는 것도 풍족하고 등등.
- 야스쿠니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
야스쿠니는 같이 싸운 전우를 위로해주는 장소다. 나혼자 살아돌아온 거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물론 나도 a급 전범 합사 같은 거 다 알고 있는데, 그냥 정치적인 것은 잘 모르겠고, 전우들을 위해서...
- 오키나와에서 전우 중 죽기전에 '천황폐하만세'라고 한 사람은 몇명있었나.
내 소대내에서 한명 봤다. 거의 없었다. 다들 그냥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포로로 잡혔을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오키나와전은 정말 지옥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포위된 상태에서 일주일을 버틴 셈이니까. 그는 웃으면서 그때를 회상했다.
■ 세번째 인터뷰: 누군가를 기다리는 도쿄 아다치구 거주 가족
가족은 전부 6명이 신사 앞 휴게소에서 쉬고 있었는데, 두 가족은 서로 형제,친척으로 보였다.
- 참배를 했나
아직 안했다
- 왜 참배 안했나
우리는 원래 참배 하러 온게 아니다. 친척들이 규슈에서 참배를 하러 올라오기 때문에 여기에 와 있다.
- 왜 친척들이 올라오나
친척들이 유족회 멤버다. 원래는 유족회 차를 타고 와야되는데 그 차를 놓쳐버려서 친척들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상경한다. 그런데 전철로 야스쿠니신사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우리가 안내하기 위해 온 것이다. 연락이 오면 구다시타역(야스쿠니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봉휴일(한국의 추석)이라 쉬는 날이기도 하고.
- 야스쿠니에는 누가 있나
할아버지가 합사되어 있다.
친척들이 오면 같이 참배할 예정이냐고 묻자 한 가족은 참배를 한다고 하나, 동생 쪽으로 보이는 다른 한 가족은 안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참배를 안하겠다는 동생측에게 질문) 왜 안하나?
다른 추도시설이 건립되게 되면 마음 편하게 하겠다.
이 대답에 형이 "너 왜 그러냐" "얘가 좀 바보다" 라고 웃으면서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동생에게 농담식으로 핀잔을 주었다.
같이 온 4-5살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 야스쿠니 신사 느낌이 어떠냐?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으니까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참배를 할 생각이냐고 묻자 남자애 둘은 그냥 신사니까 하겠다고 했고, 여자애는 그냥 잘 모르겠다고 머뭇거렸다.
■ 한국매체임을 밝히자
인터뷰가 끝나면 사람들은 어느 매체인지 꼭 물어보았다.
기자가 한국미디어라고 하니까 다들 '한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냐' 라고 반대로 질문을 했다.
오키나와전에 참전했다던 이시구로 씨는 "세상 일이라는 게 모두 찬성과 반대가 있을 수 있지만, 전몰자나 개인적으로 전쟁에 휘말려 돌아가신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서 비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아다치구 거주 가족의 경우 "한국은 요즘 별로 반대 안하는 것 같지 않나, 중국이 더 심하지 않냐"며 인상에 남는 것을 떠올리며 이야기 했다.
■ 신우익단체 잇스이카이(一水會) 기무라 미쓰히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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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1시 20분, 본전옆으로 들어가는 신우익단체 '잇스이카이(一水会)'의 깃발이 보인다. 잇스이카이의 기무라 미쓰히로 대표는, 작년 5월 신주쿠 로프트 플러스원에서 열린 "영화 야스쿠니"의 우익들만의 시사회를 주최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기무라 대표에게 "a급 전범, 그리고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한국, 대만 출신의 전몰자들이 같이 합사되어 있는 것에 한국, 대만은 물론 중국의 반발이 거센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등 동아시아 제외국들이 그런 생각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에는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는 문화와 관습도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야스쿠니 신사가 호국신사이기때문에 전몰자들은 여기에 합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전범재판에 관해서는, 일본이 잘못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나는 동의한다. 천황폐하의 허락도 없이 군부가 멋대로 나아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런 자격이 있는가?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이 잘못했다 치자. 그렇다고 미국의 전범재판을 열 자격이 있냐는 말이다" (잇스카이 기무라 대표)
그는 또한 "민주당이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하는 국립추도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 가서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 반미를 추구하는 한국의 진보좌익세력과 만나서 솔직하게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 눈치보지 말고 대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다. 실제 만나서 이야기한 적 없지 않느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