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은 퇴임시기가 가까워오면 올수록,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자동차처럼 된다. 한번 진행되면 멈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간 나오토 총리도, 이명박 대통령도, 지금 같은 처지에 있다. 때문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간 총리는 이미 운명이 다한 느낌이다. 퇴임은 이미 시간문제다.
이 대통령의 경우, 내후년 2월 임기만료까지 아직 1년 8개월이나 남아 있다. 그러나 내년은 대통령선거의 해이기도 하다. 여・야당의 대통령후보가 결정된 순간, 레임덕은 단번에 가속화된다.
'죽은 권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또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언가 성과를 올리고 싶다, 업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도자의 기본 성향일 것이다. 여기서, 이대통령이 꺼내든 것이 바로 '남북정상회담 카드'였던 것.
그런데, 북한 국방위원회의 6월 1일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폭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한국측이 1)올해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비밀 접촉을 요청해왔다. 2)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강경책)을 북측이 오인하고 있다. 모든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다"라고 변명했다. 3)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5월 9일 베이징에서 비밀접촉이 이루어졌다 등이다.
또한, 비밀접촉에서 한국측이 1) 통일원 정책실장, 국정원 국장, 청와대 비서실 전략비서관 등 3명이 나왔다 2) 두 사건에 대해 "지혜를 짜내서 넘어야 하는 산이 있다"고 말하며, 또다시 북측 사죄를 얻어내려 했다 3)북측이 거부하자 "북측에서 보면 사과는 아니지만, 우리측에서 보면 사죄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절충안을 만들자고 제안해, 북측에 "부탁이니까 조금 양보해달라"며 애원했다고 북측은 주장했다.
한국측은 이미 정상회담에 관한 청사진까지 그려놓고 있어, 두 사건이 해결되면 5월 말 정상회담을 위해 장관급 회담을 열고, 제1차 정상회담을 6월 초에 판문점에서, 제2차를 2개월 후 평양에서, 그리고 제3차를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담 기간에 개최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임기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점, 남북관계는 진보세력보다 보수세력과 손을 잡는 편이 추진하기 쉽다는 점을 호소했고, 북한측에게 "최소한 (두개의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해주지 않겠느냐. 다시 한번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이 문제를 결착짓자. 그리고 정상회담을 서둘러 열자"며, 돈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고 한다.
마지막에, 한국측은 "남북 비밀접촉이 한국에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비밀로 했으면 좋겠다"고 비밀엄수를 요청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북측은 밝혔다.
한국정부는 비밀접촉 사실에 대해 인정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북한의 일방적인 발표에 불과하다"고 부정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애원한 적도, 두 개의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결착을 지으려 한 점도, 돈 봉투를 건네며 "매수를 시도했다"고 말하는 북한측 발표를 전면부정했다.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또한 그래야만 한다.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이것밖엔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 대통령의 '대북발언'과 한국의 대북강경책을 신뢰, 지지해온 사람들로서는 경악할만한 일이다. 햇볕정책의 상징인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비판해온 이 대통령이 급변해, 김정일 총서기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니, 아마도 배신당한 기분일 것이다.
강연에서도 종종 언급하는 말이지만, 남북관계는 싸우는 듯하면 사이가 좋아지고, 사이가 좋아지는 듯하면 싸우는 관계로, 이러니저러니해도 어차피 일란성 쌍둥이의 형제 다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역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남북간에는 지금까지 청와대 습격사건, 랭군 폭파사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서해해전과 같은, 수없이 많은 험악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건 발생 1,2년도 지나지 않는 기간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북비밀접촉이 이뤄지고 남북회담이 열려왔다. 이번엔 비록 실패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시도는) 말하자면, 이 같은 패턴의 재현이라 볼 수 있다.
일본 정국도 온갖 모략과 정략이 난무하고 이매망량(魑魅魍魎: 온갖 도깨비를 가리키는 말)이 활개치지만, 이번일을 통해 남북관계는 그 이상이라고 세계는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을까.
한국군 천안함 침몰사건이 일어난 작년 3월 26일, 격노한 이 대통령은 그 다음달인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발전위원회 제 7회 전체회의에서,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세력(북한)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기회였다"고 언급했다.
다음날 23일에는 청와대에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초청한 점심 간담회에서, "(자신은) 임기 중에 김정일과 한번도 만나지 않아도 좋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회담을 위한 회담, 정치적 의도가 있는 회담은 열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나는 전임자와는 다르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할 수 없었던 선배 대통령 앞에서 대단한 기세로 말했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이 나오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북한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히 대처한다. 단호한 조치로써, 우리 해역을 이용하는 해상교통로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 협력과 교류는 무의미하다. 남북간 교역과 교류도 중단한다"고 선언하고, 북한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에 사죄하라"고 압박했다.
또한, 11월 23일 연평도가 포격됐을 때도 똑같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모험주의와 핵' 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을 옹호해온 사람들도 북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협박에 견디지 못한 굴욕적인 평화는 결국 큰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부터 북한의 도발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토록 하겠다. 100번의 말보다 행동으로 나타낼 때다"라며 대담한 기세로 말했다.
올해 4월 1일, 신공항 건설을 단념했을 때 대국민 담화에서도, "내년이 임기 종료의 해가 된다고 해서, 올해 중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계산은 하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은) 정치적인 이유로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독일 방문(5월 9일) 때는 "북한이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나선다면 대화를 준비하겠다. 우리들은 북한에게 무조건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과오를 인정해야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앞서 일본에서 열렸던 한중 정상회담 때도, 이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에게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측이 아닌 북한측이다. 우리들은 기다리면 된다"며 여유만만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북한 측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 모든 것이 속임수였다는 말이 된다. 이번 북한의 폭로로 인해 이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신용을 잃어, 레임덕이 단번에 가속화됐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대통령에게 여기서 그치지 말고, 몇번 더 북한과 접촉시도를 했으면 좋겠다. 김총서기도 무리하게 버티지 말고, 이 대통령의 러브콜을 솔직하게 받아들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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