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행사가 취소될 정도의 소란은 있었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의 민감한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냉정을 찾고 있었다. 매스컴 보도 역시 과잉반응을 부채질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일관계에는 복잡하게 얽힌 과거가 있으니, 방사능비는 반일선동을 위해 악이용하려면 충분히 이용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스컴이나 국민이 이성적인 것은 아마도 기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한국인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정체, 방사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은 원전 해외수출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다. 게다가 현 대통령의 소중한 업적에 매스컴은 원전비판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원전사고가 터진 일본에서 원전비판을 하는 매스컴이 있다면, 최대광고주인 도쿄전력이 광고계약을 끊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한국에서는 자신과 상사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큰 일이 되기 때문이다.
도쿄대학 교수 등 전력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있는 고용학자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치고, 일본 학자 중에는 원전의 무서움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인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복잡하게 발달한 이 현대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반드시 원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태양광, 지열, 열병합, 진동 등 환경오염 없이 안전한 에너지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원전은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원전에는 핵폐기물 뿐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유해물질이 이론에 반하는 방법으로 감춰져있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이 배고프고 전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데도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한국은 원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울 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연료제조소, 유해물질제조소로써도 원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론은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데도 매스컴이 조용한 것은 이상하다. 원전사고 후 일본에서는 반원전 논조를 내세우는 언론이 나타나는데 한국에는 전혀 보도가 없다. 왜인가. 매스컴이 정재계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까지 위축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한국어의 영혼은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 것일까.
조사해보니 일본은 반핵, 반원전 노래가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한 곡도 못 찾았다. 한대수, 김민기, 전인권, 강산에는 이런 음악을 하는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딱 맞는 곡은 없었다. 만약 내가 못 찾는 것이라면 누군가 알려주길 바라지만, 어쨌든 유명한 원전반대송이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은 반핵, 반원전 노래가 정말 많다.
최근 일본에서는 사망 후 더욱 화제가 되었던 락가수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있다. 그가 대표인물이다. 그의 반원전 노래는 너무 직설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원래 락이라는 것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니 예술로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반핵송을 창작하고 노래하면서 일본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견지명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존경심마저 든다. 그러나 왜 한국에는 반핵, 반원전 노래가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국 가요 가사의 빈곤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다음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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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후쿠시마 제 1원전사고 이후 유튜브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일본가수 사이토 가즈요시 반원전송을 부르는 장면)